[김윤창 칼럼] "선명해야 복음이다"
[김윤창 칼럼] "선명해야 복음이다"
  • 크리스천월드
  • 승인 2016.09.08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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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창 목사


좋은 교회 담임

인조에선교회 대표

장신대 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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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나팔이 분명치 못한 소리를 내면 누가 전쟁을 예비하리오. (고전14:8)

선명하지 못한 복음은 복음의 역할을 수행할 수 없다. 오랜 신앙생활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진정한 의미를 모른다면, 공연히 세월만 낭비케 된다.


알지 못하고 행하는 믿음의 삶은 어떻게든 그 공로가 쌓여서 좋은 열매를 맺을 것이라는 헛된 기대를 갖게 하는데, 그것은 전하는 자나 듣는 자에게 참담한 결과를 얻게 할 것이다.



선명하지 못한 복음은 참된 믿음의 방향을 제시하지 못하므로 복음의 결과인 구원을 얻을 수 없게 한다. 복음은 모든 사람에 대한 것이므로, 약간의 지성만 갖추면 다 이해할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쉽고 단순하다.


적어도 이해함에 있어서 어려움은 없다.그러나 문제는 사람의 타락한 생명이 복음을 복음답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교회 안에서의 설교와 매체를 통한 홍수같이 많은 말씀들을 접하여도 복음의 핵심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복음을 전하는 자들의 소리가 선명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것은 전달상의 문제가 아니다. 증거자가 복음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복음에 관한 지식이 ‘예수 천당’이라는 공식을 아는 정도에 머무는 것은 아직 복음을 들은 것도, 믿음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말씀을 들어야 한다. 그리고 잊게 되면 또 들어야 할 것이다.


마치 먹고나면 배고파져서 또 먹어야 하는 양식처럼 말이다. 만일 그같은 영적 상태의 사람이라면, 그는 영원한 만나를 먹지 못한 것이며 여전히 영적 굶주림을 해결하지 못한 것이다.


복음은 선명해야 듣는 자가 분별하여 알아들을 수 있다. 그래야 믿음인 것과 아닌 것을 분별하여 옳은 편을 택하여 믿음 안에서 살기 위한 전쟁을 치를 수 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들은 후에 교회와 그리스도를 위해 살게 된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의 핵심을 알지 못한다. 그것은 교육이 없거나 지적 능력이나 노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선명치 못한 복음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복음이 선명치 않다는 것은 그것을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한국 교회를 보라. 이단에 속한 자들의 왕성한 활동에 속수 무책이다. 그것은 전통 교회가 참된 교회라고 고집만 해서 될 일이 아니다. 밝고 건전하고 행복한 교회가 참된 교회라는 억지는 이제 통하지 않는다. 그것으로는 인간이 처한 갈증을 해결해 줄 수 없다. 교회에 선명한 복음이 없을 때, 듣는 자들이 복음을 깨닫지 못하여 갈피를 못잡고 거짓된 종교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선명한 복음이 전해져도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복음은 그리스도께서 귀를 열어 주셔야만 들을 수 있는 비밀의 복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해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


복음은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으로 받아들이고 그 생명으로 사는 것이다. 간단히 말해서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다. 복음을 받아들이려면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받아들이기 위해 자기 생명을 버리는 사람이다. 그러나 이는 사람의 능력밖의 일이다. 그래서 그리스도께 자신을 온전히 맡겨 드려야 한다. 그러면 그가 행하신다. 그리고 그 결과는 구원이요, 새 생명의 삶이 펼쳐진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 생명을 사랑하므로 자기 생명을 버려야 하는 복음을 받아들이길 꺼려한다. 그런데 자기 생명을 스스로 버리려 할 필요도 없다. 이미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그 일을 이루셨기 때문이다. 자기 생명이 버려졌고 그리스도가 자신의 생명이 되었다는 사실을 믿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믿음은 그가 주셔야만 가능하다. 그렇지 않으면 믿음에 이를 수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 대부분은 복음을 받아들여야 할 이유조차도 모르고 있다. 그러니 자기 생명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전부로 모셔야 할 동기가 불충분하다.


그리스도를 영접한다는 것은 자기 생명을 가지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자신의 삶이 마쳐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나 사람들은 믿기만 하면 천국과 구원이라는 결과가 주어지는 것에만 관심한 나머지 죄인인 자기 존재의 현실과 그런 자신을 버려야 한다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게 된다.


결국 그들은 대가를 치르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된다. 어떤 활동에도 불구하고, 믿음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그들은 자신들에게서 죄를 보고 경험할 때마다 당혹스러워한다. 자신의 믿음을 의심하나, 그것을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참된 진리를 찾아 헤매는 것이다.

선명하지 못한 복음은 복음일 수 없다. 믿음의 결과를 얻지 못하고 억지 확신 속에서 거짓된 삶만을 되풀이 하기 때문이다.


수 많은 사람들이 각기 복음을 말한다. 예수를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는 것은 두 말할 것도 없는 진리이다. 그러나 그 믿음에 접근하는 방식을 아는 이들은 참된 믿음을 소유한 자들 외에는 알지 못한다. 그것은 그리스도가 행하셔야 한다.


복음은 사람이 알고 전하는 경우와, 그리스도가 전하는 두 경우가 있다. 사람이 전하는 경우는 비슷하면서도 다 다르고 믿음에 이르지도 못하고 그 결과도 얻지 못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전하시는 복음은 항상 같고 동일한 결과를 가져온다.


당신이 받은 복음은 사람에게서 받은 복음인가?

아니면 그리스도께 받은 복음인가? 만일 사람에게서 받았다면, 당신은 믿음에 이르지 못한다. 복음은 육신에 속한 사람이 자기 생명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며, 그의 삶은 그리스도의 일하심을 표현하게 될 것이다. 그의 활동을 통해 복음을 전달받을 경우만 참된 믿음에 이를 수가 있다.


사람이 전하는 복음과 그리스도가 전하는 복음의 차이이다.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비슷하나 모두 제각각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전하는 복음은 오직 하나이다. 그리스도가 전하는 복음을 들은 사람은 시대와 장소를 불문하고 모두 같다.


그러나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같은 장소에서 동일한 사람에게 들었어도 서로 다르게 알고 이해하게 되며 그 결과도 다르게 나타난다. 복음을 전하는 사람이 그리스도로 전하지 않으므로 자신의 생각과 뜻으로 행하기 때문이며, 듣는 자들도 복음의 진수인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간과하기 때문에 자신의 생각대로 복음을 받기 때문이다. 결국 여러 복음이 탄생하는 것이다. 사람이 전하는 복음은 복음이 아니다. 그리스도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복음은 그리스도이다. 자신이 없어지고 그리스도가 전부가 되는 것이며, 복음의 삶은 그리스도의 삶을 의미한다. 이에 사람의 생명과 의지가 포함된다면 그것은 복음을 받아들인 것도 믿음도 아니다. 모양만 믿는 자의 것과 비슷할 뿐 너무 다르다.


따라서 복음은 자기 존재의 십자가 죽음의 실제가 경험되지 않으면 알 수 없다. 그것은 의문과 불확실성만 증폭시킬 뿐이다. 그런 믿음은 여전히 목마르기 때문에 계속해서 참된 진리를 찾아 헤매이게 한다.


그들이 찾고 찾는 과정에 들어서는 그리스도께서 부르시는 자들이다. 그러나 그처럼 찾는 자들보다 현실에 안주하는 자들이 훨씬 많다. 그들은 여전히 불확실함 속에서 머무르며 그 안에서 진리를 찾는다.


복음은 선명하다. 자기를 버리고 그리스도로 사는 것이다. 이에 이르지 않은 것은 믿는 과정일 수는 있어도 믿음에 이른 것이 아니다. 물론 믿음의 결과도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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