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갑 목사]세대간 불균형 현상에 대처하는 청・장년부여 청년과 장년이 섬김의 현장에서 만나야 산다.
[이상갑 목사]세대간 불균형 현상에 대처하는 청・장년부여 청년과 장년이 섬김의 현장에서 만나야 산다.
  • 편집국장
  • 승인 2016.03.08 1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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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는 2015년 4월 15일, 청년사역연구소(http://cafe.daum.net/vision12)에 실린 이상갑 목사(무학교회 부목사)님의 기고 글입니다. - 편집자 주 -

 


▲이상갑 목사(무학교회 부목사)
 한국교회는 세월호의 침몰로 인해 깊은 애도와 애통을 느끼고 있다. 다음 세대를 잃은 것은 무책임하고 무감각한 기성세대의 책임이라는 것은 부인할 여지가 없다. 지켜야만 할 기준과 원칙을 무시한 것이 문제이고 책임지는 자리에 있는 선장과 선원들이 승객의 구조를 뒤로하고 자신들만 살고자 다음세대를 살려야 하는 책임을 회피하고 탈출한 것이 큰 희생을 가져왔다. 세월호의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는 것은 그 어디에도 어른다운 어른이 없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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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월호 사건을 바라보면서 한국교회를 생각해 보았다. 한국교회는 적어도 청년과 신혼부부사역을 들여다보면 침체와 쇠퇴의 길로 가고 있음이 분명하다. 허다한 청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고 청년들이 결혼한 이후에 교회 정착과 헌신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유리방황하고 있다는 것이 곳곳에서 감지가 된다. 그러나 현재 한국교회의 상황은 장년 세대와 노년 세대가 차지하는 비율이 커기에 교회 재정도 봉사와 섬김도 겉보기엔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그런데 속을 훤히 들여다보면 상황은 달라진다.

 한국 교회의 미래를 주도할 젊은 기독교인이 줄어들고 있다. 선교 단체의 참여가 줄고 있고 교회의 청년부 출석이 줄고 있다. 구체적으로 국민일보 2008년 12월 9일 기사에 따르면, 통계청이 1995년과 2005년 실시한 인구센서스 종교부문 조사 가운데 연령대별 변화추이(코호트)를 추가로 분석한 결과, 특히 20세에서 34세 사이의 젊은 층에서 기독교 이탈 현상이 두드러졌다. 20-34의 젊은 층 가운데 무려 597,619명이 교회를 떠났다고 한다. 청년들 표현대로 교회를 끊어버린 것이다. 60만 대군의 청년층을 한국교회는 10년 사이에 잃어버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체와 쇠퇴가 여기에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다. 내리막길에서 브레이크가 고장이 난 자동차처럼 계속해서 추락하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그런데도 무사 안일한 태도로 일관한다면 다음 세대를 잃어버리는 비극이 예측되는 상황이다. 나중 영광이 이전 영광보다 큰 한국교회를 생각한다면 지금 빨간 등불이 켜지고 요란하게 경고등이 울리고 있는 상황을 알고 즉각적인 청년과 장년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야 할 때이다.    

 그러면 왜 청년들과 신혼부부들은 왜 교회를 떠나는가? 이에 대해 3가지 정도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첫 번째, 공동체 형성의 문제이다.

 대부분의 교회들이 청년과 신혼부부들을 양육훈련이 없이 사역의 실전으로 보내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군인들의 경우에 훈련소를 통해서 신병교육을 철저히 하고 실전에 배치하는데 그리스도인 청년들의 경우에 가장 기초적인 훈련 과정조차도 생략된 상태에서 각종 사역을 진행하기에 청년세대가 건강하게 세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양육훈련의 빈약함은 청년부 공동체의 약화를 가져왔다. 한국 교회의 어린이 사역과 청소년 사역의 약화와 더불어 수많은 청년부 공동체가 약화되고 있다. 여기에는 이유가 많겠지만 청년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적인 양육훈련이 빈약한 경우가 많다. 그 결과, 청년 공동체 안에서 영적으로 성숙하여 봉사와 섬김으로 나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세워지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문제는 청년 공동체를 약화를 가져오는 요인이 되고 있으면서 동시에 장년세대와 분리가 일어나는 주요 원인이 되고 있다고 분석할 수 있을 것이다. 건강한 청년 공동체의 형성이 해결되지 않으면 청년과 장년은 단절되고 청년은 계속해서 교회를 떠날 것이다.   

 두 번째, 목회자들의 청년 목회 철학의 문제이다.

 목회자들이 청년들을 대상으로 사람을 살리고 키우고 동역자로 세우는 일에 대한 청년 목회 철학이 빈약하다고 본다. 목회자들은 힘들고 어려워도 청년들을 제자훈련을 통해 동역자로 세우고 그들과 함께 교회를 섬기면서 장년세대와  어린이 청소년 세대를 이어주는 허리 구실을 하도록 도와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허리 디스크에 걸린 청년 세대처럼 보인다. 이러한 질병은 청년들을 탓할 것이 아니다. 오히려 청년들이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살아가도록 집요하게 청년들을 세우고 동역자로 만들어서 함께 사역하려는 유기적인 목회 철학이 빈곤하다고 생각 된다. 지금 필요한 것은 청년들을 장년세대들보다 더 집중적이고 집요하게 양육하고 훈련하여 삶의 현장에서 제자의 삶을 살아가도록 도와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을 목회 동역자로 세우려는 유기적인 목회철학의 회복이 없이는 청년 세대의 누수는 계속 이어질 것이다. 청년들을 진정한 동역자로 생각하고 유기적으로 세우는 작업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청년과 장년은 단절되고 청년은 계속해서 교회를 떠날 것이다.    


세 번째, 청년 공동체에 속하여 활동하는 개교회의 피교육자인 청년에 대한 배려와 존중 부족의 문제이다.

 오늘날 교회는 교회의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해 청년들의 봉사를 과도하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예컨대 청년들이 주일학교와 성가대와 같은 다양한 사역을 지나치게 요청받고 있다. 이는 실질적인 양육의 대상인 청년들의 현실을 간과하는 것이다. 이러한 요인이 심각하게 지속되는 경우에 청년들의 교회 이탈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진리를 알고 향유하기도 전에 일에 치여서 일만하다가 교회를 떠난 청년들은 교회에 대해 적대적이 되어 회의적으로 교회를 바라보게 된다. 장년세대가 자신들이 청년의 때 교회에서 모든 봉사를 다 감당했는데 요즘 청년들은 봉사를 너무 안 한다고 야단치고 꾸중하는 말을 들을 때마다 안타깝게 느끼는 것이 있다. 정작 자기 자신의 자녀들은 스펙을 위해서 교회조차도 나오지 않게 하고 믿음의 길에서 떠난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그것을 아는 청년들은 그러한 야단을 맞으면서 속으로는 그런 장년 세대를 위선자요 이중인격자라고 생각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청년은 봉사의 주체이기도 하지만 여전히 양육과 훈련을 통해 성장해야 하는 피교육자로서의 존중과 배려도 필요하다. 그러므로 청년을 향한 존중과 배려 그리고 전폭적인 지지 이것이 해결되지 않으면 청년과 장년은 단절되고 청년은 계속해서 교회를 떠날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교회 청년부에서는 위에서 언급한 3가지에 있어서 모두 황색 신호나 적색 신호가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문제를 방치한다면 계속해서 청년부와 장년부와의 단절은 불가피하다고 보인다. 이러한 단절은 단지 청년들의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청년들이 느끼고 경험하는 숱한 어려움들은 청년 자체의 어려움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결국 장년부의 어려움으로 이어질 것이다.

 오늘날 교회들의 속을 들여다보면 청년부와 장년부의 관계가 부모와 자녀와 같은 유기적인 관계성의 친밀함에 기초한다기보다 상급자와 하급자처럼 계급구조의 예속관계의 어색함이 자리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발견한다. 유기적인 관계의 친밀함은 믿음의 유산의 상속과 계승 발전으로 이어지지만 예속 관계의 불편하고도 어색한 동거는 머지않아서 상처를 주고 깨어진 관계로 바뀐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서 어른들이 시키는 대로 고분고분하게 일은 하지만 정작 자신들의 신앙의 본질과 기초가 선명하게 정리정돈 되지 못한 청년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여러 회의를 느끼면서 교회를 떠나기가 쉽다. 봉사와 섬김이 은혜에 대한 반응이어야 건강하다. 봉사가 은혜에 대한 반응이 아닌 경우 대부분은 자기 소위에 좋을 대로 믿고 결국 봉사와 섬김조차 자기 의로 채워지게 된다는 것이 문제이다. 기준이 성경이 아니라 자기 자신이 되는 순간부터 신율법주의자와 신바리새인이 되어간다.

 그러므로 장년세대는 청년을 담아내는 그릇인가 하는 고민을 해야 한다. 청년들이 자꾸 떠나가는 교회에는 틀림없이 청년을 담아내는 그릇에 문제가 있다. 장년 세대는 청년 세대를 품고 키워주는 넓은 그릇이어야 하는데 청년들을 담아내기에는 수용성의 용량을 초과하고 있는 것이다. 장년세대가 청년들과 눈높이를 맞추고 공유하고 공감하며 소통하려는 수고와 헌신 대신에 권위주의적으로 흘러 청년들을 담아내지 못하는 작은 그릇이 되는 순간부터 청년들은 여러 이유로 교회를 떠나게 된다. 요즘 청년세대는 인터넷 시대에 자란 세대이다. 보릿고개와 같은 불편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자란 세대이다. 이러한 청년 세대를 청년들의 관점이 아닌 장년들의 관점에는 “내가 청년의 때는 안 그랬는데...”로 시작하는 청년들을 향한 비판과 비난의 소리를 듣고서 오래참고 헌신하는 청년은 거의 없다. 가정에서도 자녀들조차 부모님 뜻대로 하지 못하는데 하물며 교회에서 청년들을 향해 쓴 소리를 자꾸만 내뱉는 것은 축구로 표현하면 자살골을 계속 넣는 셈이다. 따라서 청년들에게 맞춤식 접근이 아닌 권위주의적인 접근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그렇다면 청년과 장년이 청년과 어린이 청소년 세대가 함께 어우러지는 방법은 없는가? 그 길이 유기적 공동체의 회복이라고 생각 된다. 유기적 공동체란 어떤 공동체인가? 유기체의 국어사전 단어의 사전적 의미는 “많은 부분이 일정한 목적 아래 통일성을 가지고 조직되어 그 각 부분과 전체가 필연적 관계를 가지는 조직체”를 의미한다. 몸으로서의 통일성과 지체로서의 연합을 표현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살펴본다면,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인 청년부 공동체는 장년세대와 어린이 청소년 세대와 한 몸을 이루는 유기체라고 볼 수 있다. 예수님은 자신을 ‘머리’, 교회를 ‘몸’이라고 지칭 하셨고, 그 안에 속해 있는 성도를 서로 밀접하게 연관된 ‘지체’라고 하셨다. 이것은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유기적인 공동체임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도 교회를 몸으로 설명하여 유기적인 공동체임을 말한다. 결국, 예수님과 바울이 말한 유기적인 공동체는 모든 요소들이 한 몸으로 연결되어 예수님의 몸을 이루는 것이다.    




세대간의 불균형에 대처하는 청.장년 사역의 실제


 무학교회의 경우 세대간의 불균형을 해소하고 그리스도의 몸 된 사역을 감당하고자 구체적으로 진행하는 사역들이 있다. 그러한 사역을 간단히 소개하면서 각 교회의 상황에 맞도록 구체적으로 소화 시켜서 적용해 보기를 바란다.


1. 통합 예배 : 무학 청년부는 6부 예배가 청년층이 드리는 예배이다. 그러나 청년 부흥회와 장년 부흥회, 새벽 기도회와 연합과 일치를 필요로 하는 예배를 함께 드림으로 한 몸 의식을 가진다. 특히 청년 부흥회의 경우 장년들이 참석하여 청년들을 장년 사역으로 동원하는 것이 아니라 장년들이 청년 세대의 예배에 동참하여 함께 은혜를 공유하는 것이다. 이것은 청년성을 살리면서 교회를 젊어지게 하는 효과가 있다. 새벽기도회나 부흥회시 장년들과 동일하게 청년부에서 특송을 준비해서 드리도록 하고 있다. 또 송구영신예배의 경우에는 한해는 음악부에서 연합 성가대가 준비를 하고 한해는 청년들이 준비를 하면서 청년을 세우는 교회, 청년세대와 함께 하는 교회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함께하는 한 몸 예배를 기획하라. 

2. 통합 선교팀 : 청년들의 경우에 필요를 따라서 장년들과 연합하여 해외단기선교를 진행한다. 청년들의 역동성과 생명력 있는 사역이 전체적인 선교 진행에 활기를 불어 넣어주기에 청년성을 살리면서도 장년과 함께 진행하는 해외 단기 선교를 진행한다. 특히 의료선교의 경우나 미용 선교의 경우에는 아주 효과적이며 어린이와 청소년도 함께 하는 세대 통합형 선교로 진행을 한다. 현장에서 다음세대들이 장년세대의 섬김을 통해서 배우는 살아있는 교육의 현장이 되곤 한다. 이러한 통합 선교팀에 있어서 청년들을 단순히 짐꾼으로 취급하거나 마음대로 허드렛일을 시키는 심부름꾼 정도로가 아닌 동역자로 인정하고 존중과 배려 그리고 격려가 함께 갈 때 사역이 효과적이며 한 몸 의식이 자란다. 청년들이 장년들과 더불어 선교현장에서 함께 집수리를 하고 페인트 작업을 하고 진료를 진행하고 미용을 하면서 서로 친밀한 관계를 형성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유기적 사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3. 국내 선교팀 : 청년들이 미자립 교회 섬김의 사역을 할 때 장년 세대들이 청년들의 사역을 지원하는 형식으로 진행 한다. 청년들은 어린이 사역, 청소년 사역, 필요한 다양한 봉사 활동을 진행하고 장년 세대는 식사를 준비하고 청년 사역에 필요한 재정을 후원하면서 마치 군수물자를 지원하여 현장의 전투를 승리하도록 돕듯이 장년 세대가 청년들의 사역 지원팀을 꾸려서 돕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단순한 사역뿐 아니라 밤에는 함께 집회를 진행하면서 뜨겁게 기도하면서 영적으로도 한 몸 의식을 가지게 된다.

4. 보육원 사역 : 청년들의 경우 정기적으로 봉사하고 섬기는 보육원이 있다. 이러한 봉사의 자리에 장년 세대가 동참하면서 차량을 지원하고 물질을 지원하고 구체적인 봉사와 섬김에 함께 참여하면서 청년들의 수고와 헌신을 격려하고 식사를 사 주시거나 커피를 사 주시는 경우 참 좋은 기성세대를 통해서 청년들은 자신들이 기성세대가 되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배우게 된다. 장년 세대는 청년세대에게 찌르는 가시와 송곳이 아닌 기댈 언덕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 섬김의 자리에 동참하려는 장년 세대는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추어서 함께 사역을 진행하게 되면 청년들에게 신앙과 삶의 모델이 될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청년들에게 인생 상담을 해주고 삶으로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편지로 읽혀지는 것이다.


5. 사랑의 연탄 배달 : 장년부의 사회부에서 재정을 지원하여 사랑의 연탄배달을 진행하게 될 때에 청년들이 몸으로 봉사하고 헌신하여 연탄을 나르는 수고를 한다. 청년부에서 연탄배달을 진행하기에는 재정적인 어려움이 있기에 재정을 후원하면 청년들이 손과 발의 영역을 감당하는 것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장년부서와 연합하여 함께 진행할 수 있는 봉사와 섬김의 영역들이 많이 있다. 지역사회를 위해서 청소를 함께 한다거나 독거노인 섬김을 함께 연합해서 섬기는 것도 좋은 방법일 것이다. 이런 경우에 좋은 의도로 진행 되어지는 선한 사역들이 시험거리가 되지 않도록 미리 청년 리더십들과 의논을 하면서 지시형의 일방적인 사역이 아니라 청년들의 의견을 경청하면서 결과가 아닌 과정부터 청년들과 함께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는 작업들을 반드시 선행되어야 한다. 청년들은 동기부여가 되는 경우에는 아낌없이 헌신한다. 그러나 상명하복의 문화의 옷을 입고 다가온다면 장년은 회피의 대상이 될 것이다.


6. 식당 봉사 : 무학교회 청년들의 경우 매주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설거지 봉사를 한다. 장년 세대는 식사를 만들고 밥상을 차린다면 청년 세대는 식사 이후의 설거지를 감당함으로 어른들의 수고를 돕는 것이다. 설거지 봉사를 시작하면서 여러 어려움들이 있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청년들이 어른들의 수고와 헌신을 보고 듣고 경험하는 곳이 주방이라고 생각된다. 사실 1년 내내 설거지를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니다. 바른 목적과 방향성과 동기부여가 없이는 불평과 불만이 생기기 쉬운 사역이기도 하다. 그러나 긍정적으로 활용한다면 장년세대와의 고통을 분담하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의 수고와 헌신이 모여서 교회 공동체를 만들어 가고 있음을 확인하면서 교회에 속한 가족 공동체성을 확인하며 정체성을 가질 수 있는 자리가 설거지 자리라고 생각 된다. 무학 청년의 경우에 설거지에 헌신하는 청년들의 경우는 단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 속하여 양육과 훈련을 통해 성장과 성숙을 해가는 청년들이 많다. 양육과 훈련이 빠진 설거지 봉사는 권하고 싶지 않다. 그러나 양육과 훈련을 섬기는 일과 함께 병행하는 것은 영적으로 더 건강하게 만들어 준다고 생각 된다. 그래서 필자는 제자훈련과 성서 아카데미를 진행하면서 섬김과 봉사의 현장으로 연결하여 진행을 하곤 한다. 섬기면서 배우게 하는 것이 청년과 장년을 영적으로 건강하게 한다. 


7. 요양원 사역 : 요양원은 연로하시고 거동이 불편하신 분들이 머무시는 곳이다. 가정에서 직접 모시기 어려운 형편과 처지여서 오게 되는 곳이 요양원이기에 외로움이 짙게 자리한 곳이고 연세가 지긋하신 어르신들이 계신 곳이어서 젊음과 생동감이 부족한 곳이 요양원이다. 이곳에서 청년들의 경우 목욕봉사와 말벗이 되어 드리는 사역을 장년세대와 함께 하곤 하였다. 그리고 현재는 예배를 매주 함께 드리면서 예배 처소와 방을 이동하는 돌봄과 섬김 사역을 진행하고 있다. 아쉬운 것은 청년 세대들이 이런 연약하고 소외되고 어려운 곳에서 이름 없이 빛도 없이 묵묵히 수고하고 섬기시는 장년세대가 많이 있음을 보고 듣고 배우면서 섬김을 체질화해야 하는데 이런 자리에 청년들이나 다음 세대가 희귀하다는 것이다. 힘이 드는 사역이고 어려운 사역의 자리이기에 청년들이 꼭 가서 장년세대의 섬김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 된다. 이러한 섬김은 장애우 사역이나 사회 구석진 곳을 찾아가는 사역을 찾아보면 너무나 많은 곳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고 손짓을 한다. 청년과 장년이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며 세상을 품고 세상을 섬기며 빛과 소금으로 존재한다면 그 자체가 좋은 전도지일 것이다.  



세대간의 불균형 현상에 대처하려는 청년부와 장년부는 결국 삶의 현장에서 만나야 한다.

 그래야 장년세대의 신앙의 아름다운 유산은 청년 세대에게 상속되고 전수되어진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처럼 삶으로 가르치지 않는 지식은 죽은 지식이다. 우리 시대는 삶으로 가르치는 어른이 많이 필요하다. 성경을 삶으로 소화시키고 실험하고 현장에 적용한 장년 세대를 청년들이 섬김의 현장에서 만나게 될 때 그들의 눈이 열리고 마음이 열리고 헌신이 열리게 된다. 그러므로 장년 세대는 삶으로 청년세대에게 말하는 어른이 되어 주어야 한다. 그래야 청년이 산다. 장년세대가 청년세대에게 신앙과 삶이 통합되는 과정을 현장에서 가르치지 않는다면 청년들을 우리 시대의 바리새인이나 사두개인으로 만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오늘 우리 시대가 직면하고 있는 세대간 불균형 현상은 장년 세대에게 삶으로 가르치지 않는 신앙은 거품처럼 사라진다는 경각심을 던져주고 있다. 그런 면에서 각 교회에서 청년 사역자가 해야만 하는 숙제가 있다. 청년 사역자가 침몰하는 세대간의 불균형이 자리한 공동체를 살려야 하는 책임의식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사역자가 청년들과 함께 고민하면서 앞장서서 유기적 공동체를 만들어갈 것을 제안하고 싶다. 매월 정기적으로 청년들이 장년들과 함께 섬김의 자리로 나아가는 것을 기획해 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 된다. 매월은  아니어도 좋다. 절기별로라도 1년의 사역 가운데 장년세대와 공유하고 공감하고 소통하면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유기적 사역을 만들어 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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