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혀진 전투' 제2연평해전 영화로 되살아나
'잊혀진 전투' 제2연평해전 영화로 되살아나
  • 크리스천월드
  • 승인 2015.06.04 18: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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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는 10일 개봉에 앞서 지난 2일 시사회 개최
 
 
 ‘잊혀진 전투’이라 불리던 제2연평해전이 영화로 되살아났다.
 

 오는 10일 개봉하는 영화 '연평해전'(감독 김학순)이 2일 오후 서울 코엑스 메가박스에서 기자 시사회에 이어 유가족과 당시 생존자, 모금 참여자 등이 참석한 가운데 시사회를 개최했다. 대한민국이 월드컵으로 붉게 물들었던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 25분부터 참수리 고속정 357호 승조원들은 서해에서 느닷없이 고립돼 목숨 걸고 싸우는 장면에 접어들자 유족들은 감정적으로 힘겨워했다. 생각보다 끔찍한 전투의 참상에 놀란 듯 포탄 터지는 소리에 짧게 비명을 지르며 놀라기도 했다. 마지막 전사자 영결식 장면과 박 병장이 숨을 거두는 장면에서는 흐느끼는 소리가 영화관에 가득했다.
 
 이 작품은 논란과 우여곡절을 거듭한 끝에 영화화 작업이 시작된 지 7년 만에 관객을 만나게 됐다. 2008년 김학순 감독이 최순조 작가의 동명소설 판권을 사들이며 본격적으로 영화화 작업이 시작됐지만 투자에 어려움을 겪었다. 2010년에는 천안함 폭침 사건으로 해군의 지원이 어려워지면서 제작이 연기됐다. 
 
 영화를 세상 밖으로 구한 것은 이름 없는 사람들이었다. 제작이 재개된 뒤 제작비가 예상보다 불어나면서 2013년 국민을 대상으로 크라우드펀딩(인터넷 모금)을 시작했다. 펀딩으로 모은 돈에 해군 바자회 판매 수익금 등을 더해 총 제작비 80억 원 중 약 20억 원을 마련했다. 십시일반 모금에 참여한 이들이 총 7000여 명. 영화는 엔딩 크레디트에 약 10분에 걸쳐 참여자들의 이름을 모두 올려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영화는 2002년 6월 29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의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에 선제 기습포격을 하며 발발한 ‘제2연평해전’을 본격적으로 다뤘다. 이 전투에서 윤영하 소령과 한상국 조천형 황동현 서후원 중사, 박동혁 병장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다. 
 
 제2연평해전이 발발한 29일은 한일 월드컵 한국과 터키의 3, 4위 결정전이 있었던 날. 제2연평해전은 많은 사상자가 발생했는데도 월드컵 4강 진출 축하 분위기와 남북 화해 무드로 주목받지 못해 ‘잊혀진 전투’로도 불린다. 영화는 당시 한일 월드컵으로 들뜬 사회 분위기와 북한의 도발로 긴장감이 감돌던 NLL의 상황을 대비시킨다.
 
 클라이맥스에 해당하는 후반부 전투 장면의 러닝타임은 약 30분. 실제 교전 시간과 거의 같다. 축구 경기 전반전이 채 끝나기도 전인 짧은 시간 동안 북한군의 포격으로 평화롭던 고속정 357호는 순식간에 아비규환으로 변한다. 영화는 당시 사상자들이 어떻게 부상을 입고 피를 흘렸는지 생생히 묘사한다. 
 
 크라우드펀딩에 참여한 한 예비역 해군 중위는 “영화 제작발표 당시 평택 제2함대사령부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2002년 한일 월드컵 3, 4위전은 기억해도 제2연평해전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속상했다. 그래서 크라우드 펀딩을 한다는 소식에 주저없이 후원을 했고 이제 곧 개봉을 한다는 소식에 너무 기쁘다"고 했다. 또한 "세월호 사고와 같이 불의의 사고로 억울하게 삶을 마감한 이들도 있지만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이들이 있었다는 사실도 기억해주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적정과 치열한 교전을 벌이고 있는 영화의 한 장면 ⓒ영화 "연평해전" 예고편 화면 캡쳐

■ 제2연평해전

 2002년 6월 29일 오전 서해 연평도 근해에서 벌어진 군사적 충돌이다. NLL을 침범한 북한 경비정이 차단기동을 하던 참수리 고속정 357호를 함포로 기습 공격하면서 30분 남짓 치열한 교전이 벌어졌다. 정장인 윤영하 대위를 비롯해 조천형 하사, 황도현 하사, 서후원 하사가 당일 전사했고 19명이 부상했다. 실종됐던 조타장 한상국 하사의 유해는 침몰한 357호에서 그해 8월 수습됐다. 의무병 박동혁 상병은 국군수도병원에서 84일간 치료받다 숨졌다. 북한 경비정은 반파됐고 사상자를 30여명 낸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 해군의 완승으로 끝난 1999년 6월 15일 제1연평해전과 달리 희생이 컸던 제2연평해전을 계기로 교전수칙이 적극적 응전 개념으로 수정됐다. 해군은 연평해전 여섯 용사를 기리기 위해 유도탄 고속함 1~6번함을 진수해 윤영하함·한상국함·조천형함·황도현함·서후원함·박동혁함으로 명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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