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륙에서 살아온 고려의 흔적들
대륙에서 살아온 고려의 흔적들
  • 크리스천월드
  • 승인 2015.02.23 1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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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는 서기 918년 지금의 산동성 치박시인 송악(松嶽)에서 개국했다. 그무렵, 북송(北宋)은 개봉(開封, 감숙성 영흥현)에 도읍했고, 요(遼)는 감숙성 난주시, 정서현 등에 도읍했으며, 금(金)은 감숙성 회령현, 천수시, 영흥현 등에 도읍했다. 北宋은 고려와 양자강을 통해서 사신을 교환했다.

 

고려로 파견되었던 南宋의 서긍(徐兢)이라는 벼슬아치가 고려를 다녀와서 그 체험담을 쓴 "고려도경(高麗圖經)"이라는 책은, 고려가 1123년 송악과 이웃해있는, 새로 옮긴 도읍인 개경(산동성 임치구)에 가서 보고 느낀 체험담을 1124년에 기록으로 남긴 것이다.

 

이 책에는 개경 즉 송도를 관통하여 흐르는 강이 북쪽으로 흐른다고 되어있는데, 한반도 개성에는 성읍을 관통하는 강도 없고, 단지 작은 하천만이 남쪽으로 흐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당시 개경 근처의 대규모 절을 19군데나 둘러 보았다고 서긍은 기록했는데, 현재 한반도 경기도 개성에는 19군데의 절은 커녕 한곳도 남아있지 않고 다만 한 곳의 절터만 남아 있다.

 

또한 고려 때 저술된 "고려사(高麗史)"는 단 한권도 전해지지 않고 있으며, 단지 이성계 조선 때 만들어진 고려지도가 전해지고 있고, 이성계 조선시대에 편찬된 고려사가 전해지고 있는데 여러 번에 걸쳐서 고쳐 쓴 흔적이 보인다.

 

한편 "고려사"에 나오는 고려 때의 궁궐과 대규모 사찰들이 한반도에서는 흔적조차 찾아볼 수 없다. 그리고 고려는 태봉(泰封)을 이은 나라이고, 태봉은 동주(東州, 산동성 덕주시)에서 건국했는데, 천백년 전 태봉의 도읍지였다고 식민사학자들이 주장하는 한반도 철원에 가보면 문화재라고는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씨도 보이지 않는다.

 

왜냐하면 대륙의 산동성 덕주시가 태봉의 도읍지였고 고려의 東州였기 때문이다. 이곳에는 지금도 대규모의 궁궐을 비롯한 우리 조상의 문화재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아 있지만 남송은 산동성 어느 곳에서도 자기네 영토로 보유했던 사실이 없다.

淸山 김지원(언론인)

 

 

-중앙대학교 정외과 -중앙대학교 산업경영대학원

일간신문 기자(.뉴스코리아저널 대표기자) 

-. 수필부문 등단 -2000슈퍼엔테이너 선발대회 심사위원

-한국문인협회 회원 -2010 올해의 기자상 수상

-저서 낮은 곳에서의 이별/남도의 봄빛 /시집, 수필집, 칼럼집 등 다수

-한국의 가시오갈피 그 비밀을 말한다

-소설 '불꽃사냥'연예스포츠신문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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