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홍 목사]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김진홍 목사]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 채수빈
  • 승인 2017.09.11 16:0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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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추적추적 내리는 빗소리를 잠결에 들으며 학생시절 국어교과서에서 읽었던 글귀를 생각한다. 안톤 슈낙이었던가?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이라는 제목의 수필이다.

 

“· · · 지붕 위로 떨어지는 빗소리, 흐느낌은 우리를 슬프게 한다. · · ·“

 

60년도 더 지난 어린 시절 읽은 구절이라 정확히 기억나지는 않지만, 그 내용의 흐름만은 지금도 생생하게 다가온다. 나는 평소 처마에 떨어지는 빗소리 듣기를 좋아한다. 방바닥에 엎드린 채 세상살이를 모두 잊고 그냥 빗소리 듣기에 집중한다. 그러는 사이 지난 세월의 일들을 되새기며 상념에 젖어들곤 한다.

 

오늘 새벽에는 빗소리를 들으며 전과 다른 뼛속 깊은 느낌이 있었다. 그것을 글이나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한 마디로 줄인다면 ‘내가 인생을 너무 쉽게 살았구나’하는 온몸으로 파고드는 통증 같은 느낌이었다. 이 강렬한 느낌의 출처는 어디일까 생각해 본다. 지난해 6월에 시작되어 올해 6월에 끝이 난 한 사건이 있다. 그 사건은 나의 인생관이랄까 생활방식, 사고방식이 바뀔 만큼 내게는 심각한 사건이었다.

 

나는 우리나라와 교회가 사람 기르는 일에 소홀하다 여겨, 후학을 기르는 일에 늘 관심을 기울이고 열심히 투자를 해 왔다. 힘에 부칠 정도로 해 왔다. 두레장학회를 만들어 장래성 있다고 여겨지는 후배들 수백 명을 선발하여 장학금을 지급하였다. 그 일에 사용된 예산이 70억 원이 넘는다. 어떤 기금이 있어서가 아니다. 내 이름으로 은행계좌를 열고 취지를 표명하면 나의 뜻과 인격을 믿는 성도들이 장학금을 보내오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뒷바라지 한 인재들 중에는 장관도 있고 국회의원도 있다. 교수와 목사는 헤아릴 수 없을 만큼 많다. 그렇게 배출된 장학생들 중 이OO 목사가 있다. 지방에서 진실하게 목회하는 목사님의 추천이어서 최선을 다해 지원하였다. 미국 예일대학을 거쳐 영국 에딘버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명석한 인재로, 신뢰할 만하다 여겨 40년 목회를 은퇴하던 7년 전 후임으로 세웠다.

 

나는 은퇴 후 동두천 산속에서 삼모작 인생을 시작하면서 수도원 사역에 집중하였고, 전임 교회와는 거리를 두었다. 그런데 들려오는 소식이 좋지 않다가 급기야는 내분이 일어나 교회가 두 편으로 갈라지고 말았다. 그런 불똥이 산속에 있는 내게까지 튀어 폭행도 당하고 횡령으로 고발까지 당하였다.

 

전임 교회에서 23억의 헌금을 횡령하였다 하여 검찰에 두 번이나 불려가 13시간의 조사를 받았다. 올해 6월, 고발된 3건 모두 검찰에서 무혐의 판결을 받아 사건은 끝이 났지만,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있다. 내 마음이다. 때로는 자다가도 일어나는 화를 혼자 삭히기에 벅찰 때가 있다.

 

세상에서는 선한 노력이 모두 선한 것으로 돌아오지는 않는다. 글자 그대로 ‘우리를 슬프게 하는’ 일이다. 



△빗속에서 익어가는 두레자연마을 과실들 ⓒ두레 수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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