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창 칼럼] 뱀처럼 지혜로워라
[김윤창 칼럼] 뱀처럼 지혜로워라
  • 크리스천월드
  • 승인 2017.05.03 14: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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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천월드 DB


보라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도다

그러므로 너희는 뱀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마10:16)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 했다. 사람의 모든 행위는 결국 자기의 유익을 위한 것이다.


우리는 지난 10월부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실망과 분노로 잠을 이루지 못하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과 구속 시까지 촛불 시위를 지속해 왔다. 아마 직접 참가 하지는 않았어도 대부분의 국민들도 마음만은 함께 참여했으리라 생각한다.


여당에서 탈당한 인사들이 보수 적통을 이어가기 위해 바른 정당을 창당했다가 정권창출의 가능성이 보이지 않자 탈당했던 당으로 재입당을 시도하고 있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세상에 속한 자들의 본색이다.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상당수의 국민들도 다시 당시의 집권 여당을 지지하게 될 것이다. 결국 실리 추구로 선회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불의에 항거했던 일은 점점 희미해져서 실리 중심의 원상으로 회복되어져 갈 것이다.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은 언제나 독한 이기적 성향에 의해 시기와 질투로 상대를 넘어뜨리기 위한 중상 모략에 앞장 선 사람이 있고, 그를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그 주변에서 양심에 가책을 느끼면서도 동조하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지켜만 보고 말리지 않는 사람도 있다.


반면 끝까지 결백을 주장하는 사람은 결국 큰 해를 입게 되고 진실은 묻혀서 가려지게 되어, 억울함과 분노 속에서 울분을 삼키며 생을 한탄하다 마감하게 된다. 가끔 진실이 밝혀져 실추된 명예를 어느 정도 회복하기는 해도 상처투성이로 남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또한 정의 편에 섰던 사람들마저 불의한 자들의 회유로 결국 실리추구에 밀려 배반하는 자들이 생겨나게 된다. 사필귀정이라는 말도 있으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


어두움은 빛을 이길 수 없다 하나 실제로는 거의 어두움이 이긴다. 사필귀정이 맞는 말이나 진리는 아니다. 세상은 육신의 정욕을 가진 자들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항상 명분은 실리에 밀리게 되어 있다.


세상이 정의롭게 되는 것은 모두의 바램이나 그것은 꿈에 불과할지 모른다. 모든 사람이 세상에 속해있어서 정의를 추구하는 사람 속에도 악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스도가 세상에 와서 자신를 믿고 따르려면 세상에 속한 자기를 부인하고 따르라고 말씀하셨다. 지극히 합당하지 않는가?


그리스도는 자기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뱀과 같이 지혜롭고 비둘기 같이 순결하라 하셨다. 이것이 제자들이 험한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가는 지혜이다.


그러나 그래야 할 줄은 알지만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지가 막막하다. 뱀처럼 지혜롭게 처신하는 것이 무엇인가?


이는 곧 위에서 제시한대로 모든 사람은 불의에 익숙하기 때문에, 사람들의 겉만 보지 말고 그들의 본성의 어떠함을 깨닫고, 그들을 경계하며, 동조하지 말고 죄없는 순결한 삶을 지키라는 의미이다.


사람이 친절하다 하여 그대로 그를 인정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것이다. 사랑이 많은 사람처럼 보일 수록, 그는 강한 자아로 무장한 자일 수 있어서 그대로 믿고 행하다간 큰 코를 다칠 수 있다.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 하여 그를 믿어준다면 자기 이익과 관련된 결정적인 순간에는 그것을 이용하여 속이고 배신할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괜히 친절하고 충성되며, 사랑스럽게 행하는 것이 아니다. 아무리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는 형제라도자신에 대한 죽음을 받아들이고 부활의 실제를 체험한 사람이 아니라면, 언제라도 적으로 돌변할 수 있음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의 제자 베드로를 보라.

그리스도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것을 맹세했다. 그의 말은 거짓이 아니었다.

그러나 그 자신도 모르는 맹세였다.

그리고 그는 그리스도의 말대로 그를 세 번이나 부인했다.


사람들은 자신도 모르는 친절과 사랑을 베풀고, 언제 배신할지 모르는 충성과 신뢰를 맹세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의 말은 적어도 진실이다. 그러나 그의 본성은 언제라도 그를 거짓말장이로 만들 수 있음을 잊지 말라.


그리스도는 ‘내가 너희를 사람들에게로 보내는 것이 양을 이리 가운데 보냄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그리스도를 따라야 하는 제자들이 어떻게 처신하며, 지혜롭고 순결한 삶을 지키며 빛의 역할을 할 수 있겠는가?


가장 우선되는 일은 먼저 세상에 속한 자신으로부터 해방되지 않으면, 뱀처럼 지혜로우며 죄없는 순결한 삶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라. 아직 믿음에 이르지 않은 상황에서 그같이 살려한다면 무척 혼란하여 갈피를 잡지 못할 것이다.


이에 몇 가지를 제시코자 한다. 믿음을 가지면 자연스레 알 수 있는 것이지만, 아직 믿음에 이르지 않은 상황에서 세상 사람들처럼 막 살 수는 없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의 불의를 인정은 하되 동조는 하지 말라. 그들에게 자신의 비밀을 다 말하거나 보이지 말라.


비밀없이 지내는 것이 좋다하여 자신의 약점이나 비밀을 다 말하는 것은 그들의 이리의 본성을 자극하는 행위에 해당한다.


아무리 친한 사이고, 부모형제라도 내가 잘 되고 성공하거나, 부를 누리면 시기하고 질투하는 적이 되어 무너뜨리려 하거나, 내게 이리의 발톱을 내밀어 뜯어가려 할 것이다.


유명 연예인을 둔 부모는 그 자녀가 결혼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말에 공감하는 것은 부모라도 자녀의 재물에 기대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에게 시기와 질투를 자아낼 빌미를 제공하지 말라.

가졌어도 없는 자와 같이 행하고 가진 것을 과시하거나 자랑하지 말라.


어찌 그들의 공격을 자초하려는가?

그들이 부러워하도록 자극하지 말라. 뛰어난 지혜나 부를 가질 경우 결코 자랑하거나 뽐내지 말라. 그렇지 않으면 접근하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기뻐하고 축하해 주어도 속으로는 이를 간다는 사실을 알라.


아무런 잘못이 없어도 음모로써 넘어지게 할 수 있음을 기억하라.


세상에서 배척 당하는 사람들이 반드시 죄나 불의가 있어서가 아니다. 아무 잘못이 없어도 죄인이 되거나 한 순간에 망하는 것은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를 자극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타인의 성공과 부를 기뻐하는 것 같아도 자신보다 높아지고 잘되면 친구라도 적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같은 믿음의 형제가 더욱 큰 대적이 될 수 있는 것은 그의 부러움이 분노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자기를 자랑하거나 높이지 말라. 잘 되고 성공하고 부할수록 그렇지 않은 자 앞에서 평범히 행하든지 오히려 자기를 낮추어 행하라. 그러면 지인들의 보이지 않는 내면의 분노나 악을 잠잠케 해 줄 것이다.


평범함을 잃지 말라. 사람들의 축하 속에는 시기와 질투와 분냄이 있고, 중상 모략이 있어서 조금의 흠이나 이상스런 상황이라도 결코 그냥 지나치지 않을 것이다. 거기에 흠결이나 비밀을 보이거나 자랑하는 자세는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한 시대에서 신화를 쓴 기업들이 아무 잘못도 없이 흔적도 없이 사라져 가는 일들은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다.


아무 잘못없이 행한다고 해서 성공을 자축하고 타인에게 자랑삼는 것은 자기 무덤을 파는 행위이다.


갑작스럽게 일이 잘 될 수록 낮아지고 겸손해야 하며, 자랑이나 과시를 금하라. 그것은 한 순간에 멸망에 이르는 길이다.


세상을 무서워하여 지혜롭게 행하고 죄룰 짓지 말라. 그것이 안전하고 맡겨진 삶을 잘 수행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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