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창 칼럼] "진리로 돌아가라"
[김윤창 칼럼] "진리로 돌아가라"
  • 크리스천월드
  • 승인 2016.09.29 2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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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창 목사


좋은 교회 담임

인조에선교회 대표

장신대 신대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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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가 약한 한국 교회


사랑하는 조국에 기독교가 들어와 그 좌표를 잃고 난파되어가는 모습이 안타깝다. 진리의 등불이 꺼져있어 갈 길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대항 세력은 시대마다 항상 있어 왔다. 교회의 진정한 위기는 대항 세력 때문이 아니라, 진리가 약하든지 없기 때문이다. 갈 길을 알지 못하는 목자들과 성도들이 진리 위에 서 있지 못할 때 교회는 언제든지 위기를 맞이할 수밖에 없다.


△기도가 전부는 아니었다.


30대 후반에 장로교단의 목사가 된 나는 기도만 잘 하면 목회가 형통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더 이상 목회를 지속할 수 없는 탈진한 상태에 이르렀을 때에 진리 위에 서 있지 못한 자의 기도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한국 교회는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그리스도를 부르며 기도에 매진하는 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환상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나는 어려서부터 교회에 출석하긴 했지만 목사가 되어서까지 믿음이 무엇이지를 잘 몰랐었다. 물론 그 때는 안다고 생각했었지만 후에 십자가 진리가 전제된 복음을 깨달은 후에, 진리에 대해 얼마나 무지했었는지를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런 후에 한국 교회들을 보며 큰 부담이 밀려 왔다. 과연 한국 교회에 개혁이 가능한지 자문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 교회는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 그리스도를 좇았던 제자들의 믿음으로부터 탄생된 초대 교회의 배경과 매우 다르다. 암울하고 어두운 시절의 현실 타개와 가난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기복이 혼합된 교회였었다. 그리고 경제 부흥기에 맞물려 물질적인 부요가 마치 믿음에서 비롯된 하나님의 은혜인 것처럼 여겨져 사람들의 관심 속에 폭발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따라서 우리의 교회들은 진리가 명확지 못하다.


△진리가 무엇인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다. 그분만이 인간의 유일한 소망이다. 그러나 그분을 믿는 방식에 따라 교회가 될 수 있고, 전혀 다른 이단 종교가 될 수 있다. 교회는 진리 위에 세워져야 한다. 진리를 모르거나 없는 교회는 교회가 아니다.


며칠 전 30년 전 쯤 한 교회에서 함께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던 한 집사님과 대화를 나눈 적이 있었다. 그 집사님은 청년 시절부터 경건하고 신실했었다. 거짓이 없었고 긍정적이었으며, 기도에도 열심이었고 인격적인 바탕도 나무랄 데가 없었다. 그리고 30년이 지나 중년이 된 지금까지 변함없이 교회를 섬기고 신실한 삶을 이어 오고 있었다.


내가 다시 만난 십자가에 근거한 복음을 그에게 복음을 제시했다. 그의 반응은 처음 듣는 말씀이라 “어렵다”는 것이었다. 거의 반평생을 복음을 위해 살아온 그 집사님에게 진정한 복음을 제시했는데 복음이 어렵다는 것이었다. 정말 어려워서 어렵다기 보다는 오직 예수, 오직 은혜, 오직 기도로 전념해 온 지난 삶과 비교했을 때 뭔가 크게 달랐기 때문이다. 이 같은 현상은 그 한 사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 교회의 전체의 문제이다.


△진리는 어렵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단순한 일이 아니다. 예수를 믿기로 작정해서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예수 믿는 사람이 된다는 것은 우스운 논리이다. 진리를 몰랐던 시절에는 나도 그런 줄 알았다. 그리고 그 영접이 구원을 가져다 준 것으로 알았다. 그러나 그렇게 시작된 믿음은 믿음도 아니고, 그리스도가 영접이 된 것도 아니다. 따라서 믿음의 열매도 기대할 수 없는 일이다.


평생 말씀 묵상과 기도를 매일의 만나로 여기고 하루를 시작하는 유대인들 중에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고 제자가 된 자들이 다음에 기록된 그의 말씀들을 듣고 물러가고 다시 그리스도께로 오지 않았다. 말씀이 어려워서 누가 들을 수 있겠느냐?며 떠나간 것이었다. 말씀에 대한 지식이 충만했던 그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앞에서 물러간 것이었다.

‘나는 하늘로서 내려온 산 떡이니 사람이 이 떡을 먹으면 영생하리라...’(요6:51),

‘제자 중 여럿이 듣고 말하되 이 말씀은 어렵도다 누가 들을 수 있느냐 한대’(60)

‘제자 중에 많이 물러가고 다시 그와 함께 다니지 아니하더라’(66)


복음이란, 그리스도의 피와 살을 먹어 자신의 생명과 몸으로 삼는 일이며, 동시에 자신이 없어지고 오직 그리스도만 남는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적인 동의가 아니라, 실제적 경험을 의미한다. 또한 그리스도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막8:35)고 말씀하셨다. 이는 자기 목숨을 잃지 않으면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타고난 우리의 타락한 생명을 잃어야 함을 의미하는 것이다. 만일 누군가 자기 생명을 잃은 적이 없이 구원받았다고 말한다면 그는 진리를 대적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진리는 어렵다. 민족의 전통으로 내려오던 하나님 신앙과 말씀으로 살아 왔던 유대인들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었던 진리를, 하나님에 대한 존재 자체도 경험해 보지 못한 우리 민족이 곧바로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진리를 간과한 것이다. 교회에 나오게 된 사람들의 말을 들어보라. 그 이유가 자기를 잃고 죽음에 넘겨야 하는 진리 때문인지, 아니면 자기 사랑 때문인지를 말이다. 나는 많은 목회자들을 만났다. 그렇지만 자신에 대해 죽은 목사들을 만나기 어려웠다. 그렇다면 그 교인들이 진리를 안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제는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십자가(죽음)는 교회의 상징이다


교회의 상징은 십자가다. 십자가의 의미는 헌신이나 희생, 사랑이 아니다. 그것은 자기 존재의 죽음이다. 교회는 자기 존재에 대해 죽고 거룩하신 그리스도로 살기 원하여 진리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들과, 자신에 대한 죽음을 경험하고 그리스도께서 말하게 하심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던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있는 곳이다. 따라서 교회는 십자가 죽음의 진리로써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는 구원의 진리가 선포되는 곳이다. 그래서 죽음의 십자가 교회의 상징이 된 것이다.


만일 교회에서 사람의 뜻과 경건과 사랑과 행복, 형통이 강조된다면 교회일 수 없다. 십자가를 내려야 할 것이다. 그것으로 진리가 없는 교회임을 알 수 있다. 구원은 십자가 죽음과 그리스도의 긍휼로부터 온다. 하나님의 영광도 그러하다. 교회의 영광은 십자가에 있다. 만일 이에 대해 반론을 제기하는 자가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의 죽음이 자신의 것임을 부인하는 자가 될 것이다.


△결론


우리는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쉽게 믿어서 진리를 간과했던 지난날에서 돌이켜 지금이라도 우리에게 죽음을 요구하는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돌아가야 한다. 왜 십자가 진리가 필요한지, 그 의미를 밝혀내고, 거기에 우리 자신을 맞춰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 한국 교회의 미래는 없다. 뼈를 깎고, 죽음을 각오할 심정으로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 진리로 돌아가서 그로 일하시게 하라. 그 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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