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영구 목사] 명품 다윗신앙
[조영구 목사] 명품 다윗신앙
  • 채수빈
  • 승인 2020.07.20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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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영구 목사(광주 행복한교회)

‘명품(名品)’ 이라는 단어 자체는 참 좋은데도 대다수의 서민들에게는 마음에 스트레스를 주는 용어가 되어 지고 있다. 재래식 시장에서 값싼 제품들을 구입하여 사용하여도 별 불편함 없이 만족하며 살았던 내가 물건 구입할 일이 생기면 백화점을 찾게 되는 모습을 발견하면서 생활수준이 향상되어서일 것이다 라고만 치부할 수도 없는 것은 내 자신 목회를 하기 20여 년 전의 생활수준과 지금의 생활수준이 별반 차이가 없음을 볼 때에 환경변화가 아닌 의식의 변화에서 온 것이 확실하다.

어느 사이 길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다가 혹시 나도 명품 족(族)으로 변화될지도 모를 일이다. 조금 거슬러 올라가 옛날을 떠올려보면 그 때에도 명품 족들은 있었던 것 같다. 미제(미국산 제품), 일제(일본산 제품) 등 외국산 공산품들이 우리 국산품들 보다 훨씬 우수하던 시절에 미제나 일제 등을 지칭할 때에 뒤 글자 ‘제(製)’ 가 차츰 경음화(된소리로 변화되는 현상) 되어 ‘쩨’ 가 되어 불려졌다. 그 시절 ‘쩨’ 라면 사족(四足)을 못썼던 사람들처럼 오늘날도 어긋난 명품 족들이 있다고 한다. 겉 사람을 명품으로 휘둘러 감싸기보다 ‘명품 속사람’ 되기를 힘써야 할 것이다.

평범하지만 성실하고, 특출하지는 않지만 신실한 신앙, 진실로 믿는 명품신앙의 성도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신앙의 사람 다윗을 보자. 그가 육적으로 볼 때에 특출한 인물이었던가? 아니다. 오히려 부족함이 컸다. 사무엘이 다윗의 집에 와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수행할 때에 그의 아버지도 기름부음 대상에서 제외시켰던 어린 말째 아들 다윗이었다.

어린 소년이었지만 그가 불레셋 군대 앞에 사기가 떨어진 이스라엘 왕과 군대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은 함께 싸워주시는 만군의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다(삼상17:11, 26, 36). 다윗이 불레셋 장군 골리앗을 치러 나아갈 때에 특별한 전쟁도구를 준비하여 나아간 것이 아니었다. 그는 평소 양을 지키면서 사용하였던 막대기와 시냇가에서 주운 돌 다섯 개와 물매를 들고 나아갔다(삼상17:40). 자신의 일상생활 그대로였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왕과 이스라엘군대도 이길 수 없었던 불레셋의 골리앗을 무너뜨리고 그의 목을 취할 수 있었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강하게 하였겠는가? 그것은 손에 든 막대기도, 물매와 돌도 아닌 만군의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하신다는 믿음이었던 것이다(삼상17:41-51).

다윗, 그의 신앙이야말로 명품신앙인 것이다. 시간이 없어서, 환경이 좋지 못해서, 물질이 부족해서, 많이 배우질 못해서, 나이가 많아서, 목자가 들어 써주질 않아서, 등등 어떠한 것도 이유가 될 수 없다. 주어진 현실 지금 이 모습 이 대로 누구라도 명품신앙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명품’이란 게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이름을 뜻하는 ‘(名)’과 물건을 뜻하는 ‘(品)’ 이 만나서 만들어진 명사로서 평범한 물건의 이름을 일컫는 말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명품이란 특별한 이름이 아니다.

명자를 ‘밝을 명(明)’ 자를 쓴다거나 ‘좋을 명(始)’ 자를 쓰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쓰기에 편리하고 그래서 널리 보급되어야할 보편적인 물건들, 의롭게 사는 일에 편리를 도모할 수 있는 물건들이 명품 되어 ‘뛰어나거나 이름난 물건, 또는 그런 작품’으로 일컬음이 되는 세상을 보고 싶다. 허영과 사치, 외식으로 온몸을 휘감는 자들은 설 수 없는 그런 나라, 명품신앙 자들이 입성할 주님의 나라를 이루자!

다윗이 불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삼상1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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