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창 목사]긍휼을 통한 믿음의 구원
[김윤창 목사]긍휼을 통한 믿음의 구원
  • 채수빈
  • 승인 2018.05.31 14: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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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창 목사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종된 삶에서 불러내어 
가나안 땅에 이르게 하셨다.
그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살만하고 복된 땅이었다.
거기서 자유와 복된 삶을 
누리게 할 계획이셨다.

물론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나라의 예표이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종된 삶에서 이끌려
자유와 풍성한 삶이 약속된
가나안 땅을 향한 여정에서
우리가 어떤 믿음의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를 알 수 있다.

하나님이 가나안 땅을 약속한 것은 
진실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의 약속을 믿고 따랐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가나안 땅에
이르지 못하고 단 두 사람을 제외하고
모두 광야에서 죽게 되었다.

왜 그랬을까?
하나님의 약속이 변개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다.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단순히 동의 차원을 넘는
자기 존재를 부인해야 하고
죽음을 무릅쓰고라도 
그의 약속을 신뢰해야 하는 
믿음의 문제였다.

그들에게 무슨 일이 있었을까?
마실 물이 없을 때에
그들은 죽게 될 것을 감지했다.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이 의심됐고
죽음이 현실화 되자
그들이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다.

하나님의 뜻은 죽게될 상황에 처해도
그의 약속을 끝까지 믿는 자들을
구원하신다. 
곧 자기 목숨보다, 그리고 현실적인
문제가 죽음의 문턱에까지 다다랐어도
그의 약속을 더 신뢰해야 했던 것이다.
이것이 자기를 부인하고
그리스도를 따르며 믿어야 할 문제이다.

죽게 될 상황에 처하자 
백성들은 하나님을 원망하고 불평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약속을 저버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하나님을 원망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것으로 그들은 죽게 되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무슨 일이 있어도 그의 약속을 
신뢰해야 정상이다. 
그러나 그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한다면
그와 상관관계가 형성되지 못하기 
때문에 삶 자체가 아무런 의미가 
없어지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그와 하나가 되도록 부름받은 사람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죽음이 예견되는 상황을 만나도
그의 사랑과 약속을 신뢰하고
묵묵히 따르는 일이다. 
그러면 그의 나라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마실 것과 먹을 것에 대한 문제를 
만났을 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불평하고 원망했다.
그리고 가나안 땅의 정탐꾼들의 
말을 듣고서 또 그러했다.

그들은 시험을 만날 때마다 
자신들의 목숨의 위태로움을
감지했고 하나님을 원망했다.
가난안 땅에 이르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불신했다. 
그 결과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어갔다.

자기 목숨을 다해서라도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해야 함이 마땅하나
그러지 못한 사람들은 죽어갔다.
하나님이 인생을 허락하신 목적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어
하나가 되는 것이다.
물론 부르심을 받은 사람일 경우이다.

사람이 자기 죽음이 다가와도
그에 대해 눈감고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버리고
끝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기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다. 
죽게 될 상황이 찾아와도
하나님의 약속을 끝까지 붙드는 것이
그에 대한 도리이자 믿음이다.

그러나 대개는 죽지 않을 상황에서는
하나님을 높이고 찬양하다가도
막상 죽을 상황이 찾아오든지
하는 일마다 실패하거나
모든 것을 끝나버릴 것같은 상황이
찾아오면 그 땐 그의 약속이나 
사랑을 의심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험이란,
죽을 상황을 경험케 하시는 것이다.

만일 그런 시험이 찾아오지 않는다면
그래서 좋다고 여길지는 모르나
그것은 불행한 일이다. 
그의 부르심을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시험하시지
애굽이나 그 외 나라의 백성까지
시험하시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부르신 자만 시험하신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해도
죽음의 상황에서도 그의 약속을 신뢰하고 
자기 생각이나 뜻을 버리고
그를 따르는 사람만이
자기로부터 해방되어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는 
안식을 얻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죽음을 무릅쓰는 시험은
필수이다. 
중요한 것은 이스라엘의 거의 모두가
시험을 이기지 못했다는 사실이며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믿음으로 구원받는데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지 모른다.
믿으면 죽을 상황에서도
그를 원망하거나 불평하지 않고
구원을 약속하신 그를 신뢰하며
자신에게 주어진 삶을 
묵묵히 살아갈 것이다. 
시험이 있어야만 믿음의 진실성이 
가려지게 될 것이다.

모세의 인도를 받았던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두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애굽을 나선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약속을 보지 못하고
광야에서 죽었다. 
그리스도를 믿고 따른다고 해도
그의 나라에 들어가려면
죽음을 무릅쓴 시험에도 변개치 않는
신실함이 요구되는 것이다.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아직은 아니다. 
이스라엘이 장정만 육십 만이 넘었어도
단 두 명만이 가나안 땅을 밟았다.
비율의 문제가 아니다. 
믿음의 문제이다.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믿는다면
당신은 죽을 상황에도 자신의 생각이나
판단을 버리고 오직 그를 신뢰하고
따라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대개는 평상시에는 잘 믿고
그같은 시험이 찾아오면 
여지없이 넘어지는 것이 문제이다.

그리스도를 따랐던 제자들도 그러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주실 
하나님 나라를 누릴 생각에 
꿈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그리스도가 죽임을 
당하기 위해 군병들에게 잡히고
자신들도 위험에 처했다는 사실을
직감했을 때에 그를 부인하고 떠났다.
가장 확고했던 베드로도 그러했다.
세 번이나 부인했으니 
실수라는 말로 변명할 수 없는 것이었다.

어떤 형태로든 
복음으로 부르심을 받은 사람은
죽음의 순간 앞에서도 
자기를 신뢰치 않고 버려야 하는
시험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본래 자기를 사랑하도록 
되어있는 사람이 자신보다 하나님을,
또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더 신뢰하고
따르는 일은 불가능할 것이다.

나는 당신이 누구이든
믿음을 지킬 수 없음을 안다.
시험을 당하면 모두가 다 
넘어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그러했다면
당신도 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시험에 넘어졌을 때,
그 다음이 중요하다.

그의 긍휼을 붙드는 사람은
구원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긍휼을 구하는 사람은
그 때,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믿음을
갖게 되어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곧 자기 죽음이라는
진리가 깨달아지고 
자기 생명으로 살고자 하지 않는 
믿음의 실제를 갖게 되는 것이다.

곧 구원이란 
자기 믿음에 대해서 넘어지고
그의 긍휼을 구할 때
그가 주시는 믿음으로
자기 존재로부터 해방과 함께
그리스도 안에 들어가
안식을 누리게 되는 것이다. 
그곳이 하나님의 나라이다.
그 나라가 자신안에 찾아오는 것이다.

곧 해방과 자유와 안식, 
하나님 안에서의 풍성한 삶이다.
물론 영적인 삶의 풍성함이다.
가난하나 부요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졌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참된 믿음과 삶을 알고
다른 사람을 부요케 하기 위한
삶을 사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되 
그 믿음을 지킬 수 없는
자신의 죄인됨을 깨달아야 한다.
그런 후에 그의 긍휼하심을 따라
은혜로 주시는 믿음을 받아
진리가 믿어지고 자기 생명으로 살지 않는
구원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또한 다 이루었다고 생각지 않고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에 이르도록
푯대를 향해 살게 될 것이다.
이것이 곧 구원받은 믿음이다.

자기 신뢰를 내려놓게 하는
여러가지 시험은 필수이다. 
그를 통해 자기 믿음이 버려지고
긍휼을 구하게 되는 것이다. 
긍휼을 통해 얻지 않은 믿음은
자기 사랑을 이루기 위한 도구일 뿐이다.
그런 믿음은 아무리 대단하고
숭고한 삶을 산다 해도 가식에 불과하다.
물론 가식을 행하는 그 자신은 모른다.

그의 말씀을 듣고
참 믿음을 구하라.
긍휼을 통한 믿음을 갖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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