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영진 교수, ‘카톨릭에 관해 한 말씀 더 드리겠다’
이영진 교수, ‘카톨릭에 관해 한 말씀 더 드리겠다’
  • 채수빈
  • 승인 2017.11.1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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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S 보수 논객으로 유명한 호서대 이영진 교수가 13일 자신의 SNS에 ‘카톨릭에 관해 한 말씀 더 드리겠다’는 제목으로 개신교도가 가톨릭에 관해 논할 때 반드시 알아두어야 할 내용의 글을 올렸다.

이영진 교수는 “신학에 처음 입문해 들어온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교수님, 가톨릭은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질문이다”라며 “그걸 왜 나한테 묻나요? 하고 웃어 넘기지만, 그 질문은 마치 ‘주님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사옵나이까? 하고 묻는 베드로의 질문에 다름 아닐 것이다. 저기 지나가는 사람을 가리키며 ‘저 사람이 구원을 받겠습니까?' 라고 묻는 법은 없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역사적으로 교회는 두 단계에 걸친 강력한 분열을 겪는다. 첫 단계는 지금의 터키 이스탄불이 된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하는 동방교회와 로마를 중심으로 하는 서방교회 사이에서 일어난 분열이다. 유럽의 동쪽이라 하여 동방교회로 불리게 된 이 교회는 그리이스, 불가리아, 폴란드, 러시아, 체코 등의 지역을 거점으로 신학과 교리가 희랍어(그리스어)로 되어 있으며 희랍의 철학적 요소 특히 신플라톤주의 정서가 짙으며 동방정교회(正統敎會, Orthodox Church)라는 이름이 말해주듯이 스스로 정통교리 수호에 대한 자부심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영진 교수는 "반면 서방교회는 로마 가톨릭 교회라는 명칭이 그러하듯 이태리 로마의 바티칸 교황청의 지휘를 받는다는 정체성이 가장 도드라진 표지였다. 지역적으로 유럽의 서쪽에 해당하는 이태리,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등이 이에 해당했다. 교리나 신학은 동방교회와 달리 라틴어로 기록되었다”고 했다.

이어 "양자 간에는 색깔 차이가 있다. 동방교회가 수도원주의를 중심으로 신비주의 색이 묻어난다면 서방교회는 심리학에 의거한 신학적 지향성을 보인다. 또 동방교회가 매우 합리적인 분석과 종합에 능하고 형이상학적 정통주의가 발달했다면 서방교회는 제도와 조직이 발달해 있고 신앙과 체험을 중시해왔다. 그리고 동방교회는 영생의 문제를, 서방교회는 죄의 문제에 천착한다. 그러나 두 교회의 진정한 분열은 다름 아닌 성상숭배 문제로 점철되었다. 동방교회에서는 성상(이콘) 숭배가 금지되고 성상파괴 운동이 전개된 반면 로마 교황청은 이를 비난하게 되었는데, 그러나 성상파괴 논쟁의 실체는 황제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교황청에 좋은 명분이 되었던 사실에 있다. 다시 말하면 구원의 조건이 교회의 권위에 의해 결정된다는 교리를 서방교회에서 독자적으로 전개할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이다. 이 두 교회의 분열 시점을 1054년으로 꼽는다”고 했다.

그는 "그리고 약 500년이 안 가서 두 번째 분열이 일어났다. 이것이 바로 1517년 루터의 종교개혁이다. 유념할 것은 이 종교개혁은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일어난 분열이라는 사실이다. 동방교회가 아니라”며 “분열의 요인은 1) 면벌부[지옥 갔는데 다시 천국 갈 수 있다는] 문제, 2) 교황 교권 중심의 중보 체계, 이같은 교의적 문제 외에도, 3) 각종 사회 정치적 부패 요인들이 작용한 개혁이 바로 이 두 번째 분열이다”라고 했다.

이영진 교수는 "상기의 두 단계 분열을 통해서 지구상에는 세 종류의 기독교가 존재하게 되었는데, 앞서 가장 처음에 언급한 동방정교회, 그리고 우리가 보통 천주교라 부르는 ‘가톨릭’, 그리고 끝으로 우리 ‘개신교’이다. (우리나라 가톨릭은 서방교회 브렌치인 셈이다)”라며 "한국사람은 대개 개신교를 가리켜 기독교라 부른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기독교는 저 세 종류의 교회를 일컫는 통칭이다. 그럼에도 어찌하여 한국 개신교는 자신들만을 ‘기독교’라 부르고 가톨릭은 가톨릭이라 부르게 되었느냐? 그것은 언제나 가톨릭교회와 개신교를 대결구도 속에서 이해하는 학습을 받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개혁이란 자고로 어떤 대결의 구도가 아니라 내적 혁신을 이르는 술어이다. 그것은 루터를 위시한 초기 개혁 세력이 스스로를 ‘신성한 만국의 교회’(the One Holy Univercal Church) 혹은, 심지어 ‘가톨릭교회’(Catholic Church)라 칭했던 용례에서 알 수 있듯이, 개혁은 언제나 자기 자신 안에서부터,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목적으로 놓고 전개되는 행위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개혁세력이 스스로를 개신교(Protestant)라 부르게 된 것은 무려 한 세기가 거의 흘러간 17세기 경부터 이다”라고 했다.

이어 "따라서 “가톨릭은 구원을 받습니까?” 라는 질문은 어려운 질문이라기보다는 수준이 다소 저열한 학습에 길들어진 질문이라 규정할 수 있다”며 “배도자를 찾는 중이라면 500년 묵은 프로테스탄트 내에도 얼마든지 있는 까닭이다. 개신교도가 가톨릭에 관해 논할 때는 반드시 상기의 유래를 전제하고 논거를 잡기를 권면드린다”고 부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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